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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축구에서 ‘빌드업’은 단순히 수비에서 공격으로 공을 전달하는 전술적 요소를 넘어, 팀의 정체성과 전략이 녹아있는 핵심 플레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PL(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각 팀이 저마다의 철학과 감독의 색깔에 맞는 빌드업 루트를 활용하며, 이는 경기 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본 글에서는 EPL 팀들이 주로 사용하는 빌드업 루트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대표적인 팀들의 전개 방식을 비교 분석해보겠습니다.
후방 빌드업의 핵심: 골키퍼와 센터백의 역할
현대 EPL에서의 후방 빌드업은 단순한 수비가 아닌, 창의적인 경기 운영의 출발점으로 인식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골키퍼와 센터백입니다. 전통적인 롱킥 중심의 전개 방식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대신 짧은 패스를 통해 천천히 압박을 유도하면서 공간을 창출하는 전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이 영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골키퍼 에데르송은 단순한 마지막 수비수가 아닌, '제3의 플레이메이커'로 불릴 만큼 정교한 킥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전방으로 보내는 롱패스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압박 라인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상대 공격수를 끌어내면서 센터백들에게 패스 경로를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루벤 디아스와 스톤스는 볼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대의 강한 전방 압박에도 침착하게 빌드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브라이튼은 구조적 빌드업에 집중합니다. 골키퍼에서 시작된 공은 센터백 → 풀백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어지며, 좁은 공간에서 1~2터치의 빠른 패스로 전개됩니다. 이들은 주로 상대를 끌어들인 뒤, 측면에 있는 윙백이나 풀백에게 넓은 공간으로 전환 패스를 보냄으로써 템포를 바꾸는 전략을 자주 사용합니다.
EPL 내 다수의 팀들은 이제 골키퍼와 수비 라인을 단순한 수비가 아니라 ‘공격의 출발점’으로 바라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빌드업 루트가 경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드필더 활용법에 따른 루트 차이
EPL 팀들이 사용하는 빌드업 루트에서 가장 큰 차이는 미드필더 활용법에서 드러납니다. 미드필더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전개 방향, 속도, 압박 회피 능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지스타'(후방에서 경기 조율을 담당하는 플레이메이커)의 활용 여부가 핵심적인 전술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스날의 경우, 토마스 파티와 오데가르드가 중심이 되어 후방에서 전방으로의 빌드업을 주도합니다. 파티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수비수와 중원 사이를 오가며 패스 옵션을 제공하고, 오데가르드는 공을 받는 즉시 전진 패스를 통해 공격 템포를 빠르게 조율합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미드필더 간의 간격 유지와 3각 패스 구조를 통해 안정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합니다.
반면, 리버풀은 전형적인 미드필더 빌드업보다는 측면 플레이어의 역할에 무게를 둡니다. 알렉산더 아놀드가 풀백이지만 중앙으로 들어와 빌드업에 참여하는 '인버티드 풀백' 역할을 맡으며, 미드필더는 세컨드볼 확보와 전환 역할에 집중합니다. 이 전략은 빠른 전환과 압박 회피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맨유는 과거에는 브루노 페르난데스 중심의 공격적인 미드필더 활용을 통해 직접적인 전개를 지향했지만, 최근에는 후방 안정성 확보를 위해 좀 더 지연된 빌드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상대의 압박을 무력화시키고, 공격으로 나가는 타이밍을 보다 정교하게 조율하려는 전략입니다.
각 팀의 미드필더 활용법은 단순한 선수 배치 이상의 전술적 철학을 내포하고 있으며, 빌드업 루트의 전개 방향과 템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측면과 중앙 루트의 선택 전략
빌드업 루트를 설계함에 있어 각 팀이 선택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중앙 중심 루트와 측면 중심 루트입니다. 어떤 루트를 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기가 흘러가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며, 수비 붕괴 방식과 공격 패턴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맨시티와 아스날은 주로 중앙 루트를 이용해 상대 압박을 정면 돌파합니다.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백 간 간격이 짧고, 이 사이를 드리블이나 패스로 빠르게 통과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들은 볼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측면보다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만들어 경기를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뉴캐슬이나 리버풀은 상대적으로 측면 루트를 더욱 강조합니다. 리버풀은 아놀드와 로버트슨이라는 강력한 풀백 자원을 활용해 측면에서의 2:1 플레이, 크로스 전개 등으로 공격을 시도합니다. 측면에서 볼을 전개하며 중앙으로 들어오는 살라나 디아즈 같은 공격수들과의 연계를 통해 빠른 템포의 공격이 전개됩니다.
토트넘은 안제 포스테코글루 감독 체제 하에 측면 루트 활용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측면 미드필더가 넓게 퍼지면서 풀백과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고, 빌드업 시 수비진부터 측면을 이용한 패스를 반복하면서 상대 수비를 넓히고 중앙 침투 루트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팀마다 상황과 선수 구성에 따라 중앙 또는 측면을 중심으로 한 루트를 선택하며, 이 선택은 결국 득점 기회의 창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EPL의 빌드업 루트는 단순한 패스 전개 경로가 아닌, 각 팀의 전술 철학과 감독의 색깔이 녹아든 전술적 결정체입니다. 후방에서의 안정성, 미드필더 활용 방식, 그리고 루트 선택 전략은 경기 전체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축구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고 싶은 팬이라면, 표면적인 경기 장면 너머의 이러한 전술 흐름을 읽는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